아이를 갖기 전 나는 아이의 교육으로 고민하는 언니들에게 "난 언니들처럼 유난스럽게 안 키울 거야!"라며 언니들을 나무랐다. 조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언니들은 가소로운 듯 피식 웃으며 " 야! 너도 애 낳아봐! 나도 낳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키워봐.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안 시키는 게 아닌가 싶고 이러다 뒤처져 애가 기죽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에 초조해져"라고 했다. 난 언니들이 초심을 잃고 마음의 때가 많이 묻었구나 싶었다.
아이를 낳는 순간 엄마는 아이를 똑바로 잘 키우라는 마법에 걸리는 것 같다. 내 아이의 발달을 위해 영양소를 진심으로 대하고, 건강한 간식을 진심으로 대하게 된다.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면 이번엔 한글 깨치기에 진심이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낱말 카드를 들이대며 소리 내 읽어주고 보이는 물건마다 이름을 알려주고 아주 열심이다. 당장 쪽지 시험이라도 보는 양 보이는 사물마다 이름을 알려주며 주입한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수동적으로 잘 따라와 준 아이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다. "아이가 즐거워서 따라 읽는 것일까?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묻다 보니 결론이 났다. 욕심이었다. 엄마의 욕심이 들어간 것이다. 또래보다 뒤처지지 않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이 들어가니 조급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지금의 내 모습은 언니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런 젠장!! 옳지 않아. 정신 차려~~ "
한글은 엄마의 욕심에 의해서가 아닌 아이가 궁금해할 때 알려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낱말 카드를 치우고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 몇 권만 주변에 놓아 주었다. 기다렸다가 아이가 직접 가져올 때만 읽어 주었다. 몬테소리 교사 교육을 받을 때 배운 내용을 이때 많이 적용했다. 어릴 땐 주로 거실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아이의 물건을 거실로 다 꺼내왔다. 책장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낮은 책장을 선택했고,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책은 듬성듬성 넣어주었다. 장난감은 박스에 넣어 두는 것이 아닌 잘 보이도록 정해진 자리에 진열하여 아이가 원할 때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주변 사물에 호기심을 자주 보였다. 집 안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꺼내와서 가지고 놀았다. 아무도 초대할 수 없을 만큼 집이 지저분했다. 치워도 뒤돌아서면 도루묵이었다. 이때 알았다. 내가 대인배(?)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가 어질러 놓고 흘리고 다녀도 화가 나지 않았다. 건강하게 잘 크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함마저 들었다. 물론 몸은 무척 피곤했지만 짧은 유아기에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명이라 감당이 됐다. 위험한 물건만 아니라면 되도록 허용해 주었다. 놀고 난 후 정리도 강요하지 않았다. 엄마가 치우는 모습을 보고 함께 치우고 싶어 할 땐 같이 정리하게 했다.
성인이 돼서 되돌아보니 나의 생활 습관은 친정엄마를 많이 닮아 있었다. 이때 난 강요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아도 오랜 시간 보고 자라면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친정엄마도 나에겐 청소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깔끔하고 정리를 잘하셨다.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란 언니들은 지금도 무척 깔끔하고 정리 정돈을 잘한다. 난 언니들보다는 지저분하고 게으른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깔끔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이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다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내 살림을 꾸리게 되니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딸이 커서 엄마인 나의 모습과 닮았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 놓고 내 아이의 예쁜 모습을 위해 바른 언행과 건강한 생각을 가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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